1화 — 비 내리는 산길

비는 산을 깎아낼 듯 쏟아지고 있었다.

산허리를 휘감은 길은 오래전에 길의 모양을 잃었다. 흙탕물이 발목을 삼켰고, 비탈 아래로는 검은 물줄기가 쉼 없이 흘러내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젖은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쳤다. 마른 뼈가 갈리는 듯한 소리가 빗소리 사이로 길게 이어졌다.

횃불은 이미 몇 번이나 꺼졌다.

정파의 무인들은 더 이상 불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눈앞의 사내는 어둠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검은 장포.

비에 젖은 옷자락이 몸에 무겁게 달라붙어 있었다. 삿갓 끝에서는 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졌다. 허리춤에는 검 한 자루가 매달려 있었지만, 손은 검병에 닿아 있지 않았다.

그는 좁은 산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열두 명이 길을 막고 있었다.

앞에도 사람, 뒤에도 사람. 좌우는 비탈과 바위였다. 달아날 곳은 없었다.

그런데도 포위당한 쪽이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마교의 끄나풀이냐.”

맨 앞에 선 무인이 소리쳤다. 목소리는 컸지만 끝이 가늘게 떨렸다.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파의 살수인가?”

이번에도 침묵이었다.

무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누구도 먼저 검을 뽑지 않았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눈앞의 사내에게서는 아무런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수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압박감도, 살수에게서 풍기는 날 선 살기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 불길했다.

산길을 메운 것은 폭우뿐이었다. 빗소리는 지나치게 컸고, 그 안에 선 사내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대답하라.”

무인이 검병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사내의 삿갓 아래에서 눈이 보였다.

창백한 얼굴.

핏기가 없을 만큼 흰 피부와, 그 위에 지나치게 붉은 입술. 빗물이 턱선을 타고 흘렀다. 눈은 검은빛에 가까웠지만, 깊은 곳에 아주 옅은 붉은 기운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바로 뒤늦게, 사람 같지 않다는 생각이 따라왔다.

무인이 이를 악물었다.

“정파의 길을 막은 대가는 치르게 될 것이다.”

사내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

가장 젊은 무인이 먼저 튀어나왔다.

“허세 부리지 마라!”

검이 뽑히는 소리가 빗속을 갈랐다.

정석적인 찌르기였다. 발의 중심은 낮았고, 어깨와 팔꿈치의 선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자의 검이었다.

검 끝이 사내의 가슴을 향했다.

사내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손이 아주 조금 들렸다.

검은 아직 뽑히지 않았다.

다만 검집 끝이 미세하게 기울었다.

그뿐이었다.

젊은 무인의 검로가 반 치 어긋났다.

본인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힘은 이미 손목을 지나 팔과 어깨로 이어지고 있었다. 앞으로 뻗어야 할 내력이 어긋난 검로를 따라 비틀렸다.

“윽……?”

손목이 돌아갔다.

팔꿈치가 꺾였다.

앞으로 나가던 힘이 되돌아와 어깨를 짓눌렀다. 발은 진흙에 박혔고, 상체만 앞으로 쏠렸다. 균형을 되찾으려 할수록 더 깊이 무너졌다.

검을 휘두른 사람은 그였다.

그러나 무너진 것도 그였다.

사내가 한 걸음 내디뎠다.

검이 뽑혔다.

빠르지 않았다.

화려하지도 않았다.

빗물보다 조용한 검이었다.

젊은 무인의 목 아래로 가느다란 붉은 선이 생겼다.

그는 한동안 자신이 베였다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검이 손에서 떨어졌다. 무릎이 먼저 땅에 닿았다.

“왜……?”

그 한마디가 끝이었다.

몸이 진흙 위로 쓰러졌다.

피가 빗물에 씻겨 산길 아래로 흘렀다.

남은 무인들의 표정이 굳었다.

누군가 검을 뽑았다.

그 소리를 따라 다른 이들도 일제히 검을 들었다. 늦게 찾아온 공포를 분노로 덮으려는 움직임이었다.

“사술이다!”

“기이한 수법에 흔들리지 마라!”

“셋이 함께 간다!”

세 명이 동시에 앞으로 나섰다.

한 명은 정면을 막고, 두 명은 좌우를 갈랐다. 뒤에 남은 자들은 퇴로를 차단했다. 여러 번 맞춰 본 협공이었다. 서로의 검로가 겹치지 않도록 호흡까지 계산된 진형이었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았다.

정면의 무인은 동료가 죽은 것에 분노해 반 박자 빨랐다.

왼쪽의 무인은 두려움을 숨기지 못해 발이 무거웠다.

오른쪽의 무인은 둘을 믿지 못해 검 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사내는 그 차이를 보았다.

그는 정면으로 들어오는 검을 피하지 않았다.

검과 검집이 맞닿았다.

분명 부딪쳤다.

그런데 힘이 전달되지 않았다.

정면의 무인이 눈을 크게 떴다.

“뭐……?”

밀어붙인 힘은 옆으로 흘렀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왼쪽에서 들어오던 동료의 검세와 충돌했다.

금속음이 터졌다.

왼쪽 무인의 검이 튕겨 나갔다.

오른쪽 무인은 급히 궤도를 바꾸려 했다. 그러나 뒤에서 퇴로를 막던 자와 어깨가 부딪쳤다. 순간 진형이 엉켰다.

사내의 검이 그 틈을 지나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빗속에 검광은 남지 않았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쓰러졌다.

한 사람은 손목을 움켜쥐었고, 한 사람은 목에서 쏟아지는 피를 막으려 했다. 마지막 한 사람은 자신을 찌른 검이 동료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바닥을 내려다봤다.

“진형을 유지해!”

누군가 소리쳤다.

“흔들리지 마라! 저놈은 기세가 없다!”

기세가 없다는 말은 자신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사내는 그 말을 들은 듯 고개를 조금 들었다.

삿갓 아래의 얼굴이 드러났다.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웃고 있어…….”

누군가 숨을 삼켰다.

사내의 눈은 웃지 않았다.

턱은 보이지 않을 만큼 작게 떨리고 있었다. 숨은 일정하지 않았다. 입꼬리는 웃음이 아니라 경련처럼 굳어 있었다.

하지만 무인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며 웃는 괴물.

그 인식이 퍼지는 순간, 두려움이 진형 전체를 흔들었다.

사내는 그 두려움의 방향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먼저 달아날지.

누가 분노로 뛰어들지.

누가 동료를 방패로 삼을지.

아직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미 모든 흐름은 시작되어 있었다.

맨 뒤의 무인이 뒷걸음질쳤다.

그 작은 움직임이 신호가 되었다.

앞의 무인은 퇴로가 막힐까 두려워 무리하게 돌진했다. 옆의 무인은 혼자 남을까 두려워 따라 나섰다. 지휘자는 무너지는 진형을 붙들기 위해 더 크게 소리쳤다.

“진격해!”

그 명령은 질서를 되찾지 못했다.

오히려 모두를 한꺼번에 무너뜨렸다.

검이 엇갈렸다.

기가 충돌했다.

발이 진흙에 빠졌다.

한 명이 넘어지자 뒤의 자가 그를 밟았고, 옆의 자가 휘두른 검이 동료의 소매를 찢었다. 협공은 더 이상 협공이 아니었다.

사내는 그 사이를 걸었다.

달리지 않았다.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의 검은 사람을 쫓지 않았다.

무너지는 순간만을 지나갔다.

마지막 비명이 그친 뒤에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산길에는 시체들이 흩어져 있었다.

정파의 문양은 피와 흙탕물에 번져 알아보기 어려웠다.

사내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검 끝에서 피가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빗물이 곧 그것을 지웠다.

그는 가장 가까운 시체를 내려다봤다.

방금 전 자신에게 달려들었던 젊은 무인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얼굴이 흔들렸다.

낯선 얼굴 위로 다른 얼굴이 겹쳤다.

웃는 얼굴.

비웃는 얼굴.

말없이 눈을 돌리던 얼굴.

사내의 손끝이 떨렸다.

빗소리 사이에서 누군가 웃었다.

아니, 여러 사람이 웃었다.

소리는 가까웠다가 멀어졌다. 지금 죽은 자들의 목소리인지, 오래전부터 따라온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사내는 눈을 감았다.

그때 아주 낮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기와 질투를 조심하라.”

손끝의 떨림이 멈췄다.

“먼저 맞서지 마라.”

사내의 입술이 아주 조금 벌어졌다.

그러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선배를 존중하라.”

목소리는 다정했다.

그래서 더 아팠다.

사내는 검을 천천히 검집에 넣었다.

찰칵.

짧은 소리가 빗속에서 유난히 선명했다.

그는 쓰러진 자들을 뒤로하고 산길을 걸었다.

누구도 그의 이름을 묻지 못했다.

누구도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날 밤, 살아남은 한 사람은 훗날 이렇게 증언했다.

검은 장포의 검객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기세도, 살기도 없었다고.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동안, 웃고 있었다고.

그 증언에서 단 하나만은 틀렸다.

그는 웃고 있지 않았다.